시를 주변보다 많이 읽는 편이지만 외국 시는 읽기 전 마음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정서가 달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원문에 존재하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때 단순히 마음으로만 느끼면 되는 게 아니라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모르는 채 무작정 읽으려 덤벼드는 탓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덴마크라면,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아주 먼 나라 중 하나인데 이 시집을 읽게 된 건 부제 때문이었다.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
2014년에 원본 책이 처음 출간되었는데 2022년에야 한국에서 이 책이 번역된 것은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거리와 번역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분노 역시 책 안에 들어있다.
이 책은 특이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모든 문장이 '화가 난다'로 끝난다.
이런 식이다.
여자는 오늘날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찾아주는 일보다 부모들을 위해 아이를 찾아주는 일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이다와 비야르케가 자신들이 서구의 백인이라는 점에 전혀 비판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고 있는 양모에게 화가 난다.
끝없는 장시로 느껴진다. 읽으면서 좀 더 깊은 논의를 이 형식을 포기했다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반드시 이 형식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만 했을 것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문구 '화가 난다'는 그의 개인적인 분노에서 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확장해 나가는데 변하지 않는 초석으로서 역할을 하며 무엇보다 얼마나 그의 감정이 거대한지도 직접적으로 독자가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작가가 지적하고 있고 기사가 말하듯이 나의 해외 입양에 대한 인식 역시 전혀 다르지 않았다. 헤어짐에 대한 안타까움.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 입양 갔으니 괜찮을 거라는 대책 없는 희망에 가득찬 인식.
그러나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작가는 입양된 부모와 국가에서 눈에 보이게 다른 특성으로 인해서 겪은 정체성 문제, 뿌리에 대한 탐구,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미치는 정신적 육체적 영향,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태도와 성격 그 모든 것을 탐구한다. 여기서 화를 내며 하는 질문을 읽으면 단지 글자를 읽는 것인데 나도 몸이 아파진다. 모든 건 분명하고 단순하게 끊어지지 않는다. 복잡한 문제다. 이야기는 점차 확장된다. 작가의 말처럼 왜 그들에게 해외에서 입양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가. 대리모 산업과 비슷하게 해외 입양은 거대한 국제적 산업이 되었다. 여기에는 분명 식민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 요소가 존재하지만 비판의식이 부재한다. 얼마나 많은 입양의 과정에 불법이 이뤄졌고 여전히 불투명한지 보면 기가 막힌다. 입양기관의 활동에 대한 감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도 (이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 무대응으로 일축한다. 미혼모를 차별하고 낙인 찍는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 아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낸 고통이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층위가 모두 얽힌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면 작가가 말한 것처럼 부모부터 시작해서 복지에 6.9퍼센트만 쓰는 한국 정부와 전세계적 입양 네트워크까지 화가 안 나는 게 없다.